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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시각] 일상과 인생을 지배하는 선택의 어려움

황태자의 사색 2022. 5. 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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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시각] 일상과 인생을 지배하는 선택의 어려움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있기에
아무것도 고를 수 없게 된 시대

재고 망설이다 때 놓치지 말고
일단 결단 내리고 몰입해보길

  • 입력 : 2022.05.07 0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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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한 선택은 흔히 '나노 단위'라고 할 만큼 세세하여 점심 메뉴 선택에서 전자제품의 종류, 자동차, 인생의 꿈이나 배우자 선택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고민을 하게끔 요구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콘텐츠나 정보, 각종 지식은 이러한 선택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가령, 오늘 저녁에 무슨 영상을 볼지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공중파 TV 몇 개의 채널 중 하나만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은 물론이고,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 등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인터넷TV(IPTV), 유튜브 등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그중 어떤 프로그램이 나를 '가장' 만족시켜줄지를 안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오늘 저녁에 볼 프로그램 하나를 선택하려면, 그 무수한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머지 선택지에서 눈과 귀를 닫고, 최대한 선택지를 줄이고 줄여서 하나를 간신히 선택해야만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선택을 포기한 채로 아무것도 보지 않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고민하다가 결국 유튜브를 켠 채 알고리즘에 따라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는 저녁 시간에 볼 영상 하나를 놓고도 분명 어떤 '부담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어려움 또는 부담감은 인생 전반에 퍼져 있다.

선택의 어려움은 청년 세대가 마주하는 연애의 어려움이나 결혼의 어려움과도 깊이 관련된다. 흔히 청년 세대는 연애에서 깊은 관계보다는 '썸만 추구'하고, 결혼율도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등 진지한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연애시장 및 결혼시장이 '전국적 선택의 장'이 되고, 사랑 자체에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현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주변에서의 만남이나 소개에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휴대폰 앱 등에 접속하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과 매칭될 수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동호회 등을 통한 다양한 만남이 가능해졌다. 그 가운데 단 '한 명'을 선택하여 다른 여지없이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많은 가능성을 버려야 하는 부담감이 따르는 일이다. 결국에는 끊임없이 선택을 지연하다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인생의 꿈'을 자기만의 의지로 선택하라는 요구를 끝없이 받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진짜 원하는 걸 찾아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실제로 그 무언가를 선택할 때 너무 많은 것을 고민하고 탐색해야 할 부담감을 동시에 주기도 한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인생 내내 고민하는 일이 이 시대의 과업으로 주어져 있다.

선택지가 넓으면 자유롭고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선택의 쓰나미 속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선택하기, 그리고 선택에 만족하기'가 가장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선택에 과도하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 지나치게 고민하며, 그로 인해 삶의 여러 의욕이나 기력이 소진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을 제한하고 미루지 않으며,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선택의 시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때론 수많은 정보를 뒤로한 채 선택해버리는 결단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다음부터는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리기보다는, 내가 한 선택에 깊이 몰입하여 그것이 내 오늘이 되게 하고, 내 삶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나만의 삶이란, 그런 식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