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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의 기억이 묻는다…당신은 가해자였나 피해자였나, 그때 어른들은 무얼 했나

황태자의 사색 2022. 5. 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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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의 기억이 묻는다…당신은 가해자였나 피해자였나, 그때 어른들은 무얼 했나

극장부터 OTT까지 평정
학폭 콘텐츠 인기 이유는

  • 김유태 기자
  • 입력 : 2022.05.06 17:08:06   수정 : 2022.05.06 19: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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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학생 부모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한 장면.
'자식이 괴물이 되면, 부모는 악마가 된다.' 배우 설경구 주연의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홍보 문구다. 학교폭력(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학생. 교장실에 불려간 부모들은 자식의 죄를 감추려 철면피로 변해간다. '학폭 콘텐츠'가 한국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평정하고 있다.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부터 '박화영'까지 그동안 한국에서 학폭 소재 영화는 시대와 호흡하며 성장했지만, 최근 들어 더 대중적인 서사에 탄탄한 스토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OTT 드라마 '돼지의 왕' '소년심판' '지금 우리 학교는'도 학폭의 단죄를 주제로 삼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학폭은 왜 콘텐츠계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질까. 또 학폭 영화·드라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제목부터 강렬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폭 가해 학생 부모의 '진상'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다. 학폭 피해 학생 건우가 호숫가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자 병원 이사장, 전직 경찰청장, 같은 중학교 수학교사, 변호사인 가해 학생 부모들이 교장실에 불려간다. 건우가 편지를 남기고 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편지에는 건우를 괴롭힌 4명의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건우가 사망하자 편지는 유서가 된다. 배우 설경구는 가해 학생 한결이의 아빠이자 변호사로서, 법률 지식을 총동원해 자식을 구하는 아버지가 된다. 점잖고 이성적이었던 성격의 그는 절박한 마음에 추악하게 변해간다. 아들은 입을 다물어버리고 가해 학생 부모 3인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그 과정에서, 한결이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부모들은 그 와중에 '주동자가 누구냐'며 서로 책임을 전가하려 악다구니를 쓴다. 이 영화에는 기막힌 반전이 차례대로 나온다. 영화의 몇 가지 반전 포인트는 왜 이 서사가 소설, 연극, 영화에서 고르게 주목받았는지를 증명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학폭 문제를 둘러싼 어른들의 리액션은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소재다. 세대 갈등, 계급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라며 "유례없는 저출생 시대는 미래의 주축이 될 세대들에 대해 더 지대한 혹은 집요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돼지의 왕'은 학폭 이후 20년 뒤에 펼쳐진 복수극을 보여준다. 학폭의 피해자, 아니 학폭의 목격자라도 열광할 만한 소재다. 피해 학생 황경민은 중학생 시절 자신에게 수음을 강요한 동급생 안정희를 찾아간다. 버스회사 대표가 된 경민은 가명을 쓰는데, 자동차 정비업체 사장인 정희는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횡재에 입을 떡 벌린다. 그러나 경민은 결국 자신을 몰라보는 정희를 묶어놓고 칼로 도살하듯 살해한다. 그런데 경민의 '안정희 살인'은 복수극의 시작일 뿐이다.


애니 원작의 티빙 드라마 `돼지의 왕`.
이병철 문학평론가는 "또래 집단에서 고자질쟁이로 낙인찍힐까 봐 끔찍한 지옥을 겪고도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피해자들을 그간 학교는 너무 많이 발생시켜왔다"며 "최근 콘텐츠들은 그런 상처를 지닌 많은 이에게 대리만족을 준다"고 강조했다. 경민이 한 명씩 찾아가는 2학년 5반 학생들은 죄책감이 없다. 한 사람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심어주고는 "그저 애들 장난이었다"는 식으로 과거를 합리화해버린 것. 경민은 복수를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은 청소년 폭력을 본격적으로 응시하면서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면밀히 검토하는 명작이다. 배우 김혜수가 연기한 판사 심은석은 평소 소년범을 지극히 혐오하는데, 소년범 최고 형벌인 '10호 처분'만 내린다고 해서 별명도 '십(10)은석'이다. 심 판사는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 시험지 유출 사건 등 심각한 청소년 사건과 마주한다.

법원이 위탁 운영하는 푸름센터에 머무는 리더 최영나, 연화 집단 성폭행 사건의 주범 백도현은 학폭 수준을 넘어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범죄의 선을 넘나든다. 이병철 평론가는 "학폭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는 가해자 위치보다는 피해자, 적어도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선한 사람들"이라며 "드라마 '돼지의 왕'이 사적 복수를 통해 관객에게 쾌감을 준다면 '소년심판'은 공적 영역에서의 처벌을 이야기한다. 경민의 사적 복수, 심 판사의 냉정한 판결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단죄하지 못한 학폭 이슈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심리"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K좀비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도 시작은 효산고교에서 벌어진 학폭이었다.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아들 진수를 보다 못한 과학 교사 이병찬이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만들어 학교에 퍼뜨리면서 드라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1회엔 옥상에서의 학폭 현장이 잔인한 세필화처럼 그려진다. 과거 좀비 콘텐츠에서 바이러스 확산의 계기가 자본주의의 탐욕(영화 '부산행'), 또는 권력자들의 이기심(드라마 '킹덤')이었던 데 비해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폭을 바이러스 출현의 결정적인 계기로 삼았다.

윤성은 평론가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 '펜트하우스' 등에서도 보듯 10대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이는 고령화 사회 이면에서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커졌다는 뜻"이라며 "이때 학교는 하나의 사회이며, 압축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바라보는 시도가 된다. 학폭 이슈에 관한 콘텐츠는 예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주로 독립영화를 위시해 만들어진 데 비해 이제 좀 더 대중적인 소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