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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과정을 밟을 때만 해도 혼자 노력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생기고 박사과정을 밟으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남편뿐 아니라 어린이집 선생님, 친척의 도움도 받았다. 시댁에서도 어려운 일 있으면 "우리가 해주겠다"고 말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학위수여식에서도 대표로 선정됐다.
▷혼자 이뤄낸 성과가 아닌데 이렇게 대표자로 선정됐다는 게 부끄럽고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값진 열매지만 혼자만의 성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미국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석사를 졸업할 때쯤 첫째 아이가 찾아왔다. KAIST와 입시 인터뷰가 잡혔는데, 출산하고 10일 된 시점이었다.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진 데 감사했다. 비행기 탄 시간조차 감사했다. 2016년 2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돌보며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2017년 1월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2020년 1월에는 셋째를 출산했다. 그때는 한창 졸업논문을 쓰던 시점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도 논문을 썼다.
―아이를 키우며 논문을 작성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아이가 세 명이다 보니 각자가 겪는 어려움을 다 보고 해결해줘야 하는, 양육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이들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들다. 몸도 힘든데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너무 힘들었다. 둘째를 출산한 뒤 첫째가 고열로 2주 동안 입원을 했다. 아기가 질투도 나는데 표현을 못하고 있다 보니 마음의 병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겠다.
▷아들이 말을 배우는 게 늦었다. 5세까지도 말을 잘 안 했다. 나 스스로가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연구하고 집에 오면 쉬고 싶어 아이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 때문에 아이가 말이 늦는 것처럼 느껴졌다.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은 아이가 셋이니 자기들끼리도 말을 많이 한다. 그렇게 말이 트였다. 아이가 많은 게 장애물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좋은 점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둘째를 가진 후에도 고민이 많지 않았나.
▷한 명만 키우기도 힘든데, 학위 과정 중에 둘째를 갖는 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했다. 남편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준 게 큰 힘이 됐다. 연구실에서는 "너 큰일 났다, 잘렸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반응을 들을 때마다 내 커리어는 여기까지구나 하고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몸조리 잘하고 돌아오라고 한마디 해줬다. 그 한마디가 모든 고민을 끝냈다.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의 지지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나는 사실 혼자 조용히 생각을 많이 하고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굉장히 긍정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 남편을 만나게 됐다. 아이들도 순수하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한다. 일이 있거나 걱정이 있어도 아이들이 "엄마 걱정 마"라며 말을 해준다. 이런 격려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해준 것 같다. 남편은 결혼할 때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결혼했는데, 끝까지 지켜줘서 너무 고맙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학업은 순탄했나.
▷셋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졸업논문을 쓰기 시작한 게 2020년이었다. 최종 출판된 건 올해다. 출판까지 2년이 걸렸다. 2020년에 다 써서 7월에 학술지에 게재를 신청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래도 교수님은 충분히 가치 있는 논문이라고 응원해줬다. 6개월간 실험을 더 보완했다. 2021년에 처음 캔서 리서치에 논문을 제출했는데, 심사위원 3명 중 2명은 긍정적 의견을 냈지만 1명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봤다. 나머지도 이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게재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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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을 하려면 2~3년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결과가 좋게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여러 실험을 거치고 데이터를 분석해 동물실험에 대응할 수 있는 결과라고 설득했다. 결국 마지막 심사위원도 게재를 승인했다. 게재 승인 답변을 받고 정말 많이 울었다. 논문을 게재하는 데 부정적이던 사람을 설득해냈다는 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때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많은 여성이 학업 도중에 출산하면 사실상 박사학위 취득은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저조차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스스로도 해낼지 몰랐고, 사람마다 상황이 많이 다르다. 용기를 잃지 않고 하면 된다는 말은 무책임하지 않나.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할 수 없는 부분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며, 믿고 자신도 노력해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정말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것들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용기다. 저는 육아도 그렇지만 결혼만 해도 커리어는 끝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비혼주의자이기도 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신과 있으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나에게 주입했다.
―어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나.
▷유방암에 대한 연구다. 유방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현재까지 치료 방법이 없는 암종이 있다. 치료법이 없으니 매년 항암치료를 하다 죽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걸 덜 악성인 종으로 전환한 다음 현존하는 치료법으로 치료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전체 유방암 환자 중 10~15%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다.
―유방암은 완치율이 높은 줄만 알았다.
▷루미널A라는 형태의 환자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적은 비율이지만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들이 아직 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연구했다. 논문은 첫 단계다. 임상시험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
―유방암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어린 시절에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자라면서 친척들이 암으로 돌아가시는 걸 많이 봤다. 그때부터 암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육아와 박사과정을 병행하던 시기의 생활이 궁금하다.
▷때에 따라 달랐다. 보통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를 준비시키고, 9시까지 KAIST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출근했다. 그러고 일하다 오후 5시에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다. 다시 학교로 가서 연구하고 8시에 퇴근했다, 아이를 봐주시는 분이 그사이에 아이들을 돌봐줬다.
―스스로 바라보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제가 자신을 보는 모습, 다른 사람이 저를 보는 모습이 어떨지를 생각하는 게 평생 숙제였다. 어릴 때부터 주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아이였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게 제약으로 느껴진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한계가 생기는 듯하다. 당연히 좋게 보이고 싶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아가려 한다.
▶▶ 최새롬 박사는…
1988년 출생. 1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2007년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빌&멀린다게이츠재단 장학생으로 UC버클리에 진학했다. 2011년 졸업 후 1년간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2014년 과학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2015년 줄기세포학으로 두 번째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 KAIST 바이오·뇌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해 6년 만인 2022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가며 지도교수 등과 함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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