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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스타트업이 난데없이 와인바를 연 이유는

황태자의 사색 2022. 6. 1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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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스타트업이 난데없이 와인바를 연 이유는

플랫폼업체 ‘오프라인 매장’ 新사업 아이디어 끌어낸다

입력 2022.06.13 04:24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와인 판매 매장에서 소상공인 매출 관리 서비스 한국신용데이터 직원이 상품 정리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자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사업 아이디어도 얻자는 취지에서 지난달 초 가게를 열고, 원하는 직원들은 일일 사장님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김지호 기자

자영업자 매출 관리 서비스 앱 캐시노트를 운영하는 한국신용데이터는 지난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약 20평 규모의 와인바 겸 와인 판매 매장을 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원하면 직군·경력에 상관없이 원하면 월·수·금요일엔 본사 대신 이 가게로 출근해 일일 사장님으로 일한다. 자영업에 대한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현장에서 사업 아이디어도 얻자는 취지에서 회사가 일부러 가게를 낸 것이다. 말하자면 ‘체험 삶의 현장’을 위한 일터다.

이 회사의 금융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 김형기(40)씨도 지난 10일 이 가게로 출근해 매장 청소부터 상품 재고 확인, 전표 관리 업무를 했다. 김 매니저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영업 현황을 각종 숫자로 받아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사장님들의 상황이나 심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오프라인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현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오프라인의 일을 온라인화하는 업체들이 오프라인 현장을 체험해보고 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사무실을 벗어난 직원들은 고객을 직접 응대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 있다.

◇스타트업 체험 삶의 현장

신선 축산물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스타트업 정육각은 경기 김포·성남에 자체 고기 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 사무실 직원들이 최대 5일간 생산직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제품이 입고·가공·포장·출고되는 공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정육각 관계자는 “사무실 직원들이 ‘육류의 생산 과정 전반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업무 이해와 제품 개발·기획에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재능 거래 플랫폼 크몽은 직원 교육 등을 통해 직원들에게 프리랜서 일을 해보도록 적극 권장한다. 직원들이 본업에 충실하길 원하고 겸업에 제한을 두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실제 이 회사 마케팅팀 한 직원은 자신의 PPT(파워포인트) 제작 능력을, 개발자 한 명은 데이터 분석 도구를 자사 플랫폼에 내놨다고 한다. 크몽 관계자는 “직원들이 근무 시간 외에 자신의 재능을 살려 직접 프리랜서로 뛰어보면서 프리랜서들의 애환을 체험해보면 우리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직원 발품이 핵심 자산

인공지능·증강현실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침투 중인 부동산 스타트업 분야에선 직원들의 ‘발품’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알스퀘어의 정보인프라부문 직원 80여 명은 사무용 빌딩, 물류센터을 직접 답사하고 수집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 건축연도나 층수·면적처럼 공개된 데이터 외에 직접 현장을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건물주·관리인의 성향이나 건물 출입구 방향, 주차장·화장실·엘리베이터 개수 등 세세한 정보까지 파악한다. 전국 물류 물류센터 1만2000여 곳에 대한 발품 조사도 지난달 완료했다. 조사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알스퀘어 관계자는 “현장 방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건물 정보까지 더해 고객들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적절한 건물을 찾아내 중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들의 현장 행보는 실제 사업 아이디어로 연결되기도 한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와인 매장 일일 사장님 체험을 통해 소상공인 매출 관리 분야 외에 비용(지출) 부문으로도 서비스 확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사업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현장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실제 사업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며 “동시에 회사가 성장하면서 늘어난 신입 직원들 교육 차원에서도 현장 체험의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