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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빼고 빛은 더하고…척박한 아프리카에 미래를 짓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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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빼고 빛은 더하고…척박한 아프리카에 미래를 짓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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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프리츠커 수상자인 프란시스 케레는 “고향 사람들에게 좋은 건축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며 아프리카에 학교, 도서관, 의료센터 등 많은 공공 건축물을 설계했다. 부르키나파소에 지어진 쇼게 중고등학교. 에어컨 없이도 열기를 막고 통풍이 잘된다. [사진 pritzkerprize]

전기도 수도도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촌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을에 학교가 없어 13㎞ 떨어진 학교를 걸어서 오갔다. 어린 나이에 장학금을 받아 독일 목공직업학교로 유학했고, 베를린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첫 프로젝트는 고향에 초등학교 짓기. 1998년 기금 3만 달러를 모아 모래 위에 도면을 그리고 주민과 힘을 합쳐 3년 만에 학교를 완성했다.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 프란시스 케레(56) 얘기다.

2022년 프리츠커 수상자인 프란시스 케레는 “고향 사람들에게 좋은 건축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며 아프리카에 학교, 도서관, 의료센터 등 많은 공공 건축물을 설계했다. 부르키나파소에 지어진 쇼게 중고등학교. 에어컨 없이도 열기를 막고 통풍이 잘된다. [사진 pritzkerprize]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재단은 15일(현지시간) 부르키나파소 출신 건축가 케레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아프리카 출신 건축가의 수상은 이 상이 제정되고 43년 만에 처음이다. 심사위원단은 “케레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해 헌신했다”며 “그는 주변 환경과 주민이 하나가 되는 건물을 만들었다. 그의 건축은 허세 부리지 않고 우아한 조형미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더운 기후에 맞는 과학적 설계 실험

케레가 주민들과 함께 고향에 지은 간도초등학교. [사진 pritzkerprize]

부르키나파소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1965년생 케레는 통풍이 안 되고 햇빛도 거의 들지 않는 교실에서 공부하며 “언젠가 더 나은 건물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건축 지식과 지역의 흙·나무 등 재료로 초등학교 건축을 추진했다. 주민도 힘을 모았다. 남자는 수레로 돌을 운반하거나 벽돌을 만들었다. 여자는 항아리를 이고 7㎞가 넘는 길을 오가며 필요한 물을 날랐다.

프란시스 케레

고향에서 작업하며 그는 찜통더위와 열악한 조명 문제를 고민했다. 그는 시멘트 강화 벽돌과 높게 들어 올린 지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또 건물 측면에 창문을 내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고 천장 구멍으로 열기가 빠지게 했다. 아프리카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 기술을 총동원하는 데 대해 그는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에 대응하는 적정한 기술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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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이 프로젝트로 학생 수가 120명에서 700명으로 늘었고, 그 이후 교사 주택(2004), 증축(2008), 도서관(2019)으로 프로젝트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케레는 2004년 아가 칸 건축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말리·토고·케냐·모잠비크·수단 등지에 건물을 지었는데 에어컨 없이도 쾌적하게 자연 냉방을 활용했다.

케레가 설계한 2017년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사진 pritzkerprize]

케레는 2005년 베를린에 설계사무소 ‘케레 건축’을 설립했다. 미국 몬태나주 티페트라이즈 아트센터(2019), 부르키나공대(2020) 등도 설계했다. 2017년에는 영국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설계도 맡았다. 자하 하디드, 프랭크 게리, 렘 콜하스, 페터 춤토르 등 쟁쟁한 건축가가 거쳐 갔던 프로젝트다.

“공동체 기쁨 만드는 게 건축의 본질”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밸리 음악페스티벌을 위해 만든 축제 텐트. 고향에서 자라는 바오밥 나무의 모양을 참조했다고 한다. [사진 pritzkerprize]

심사위원단이 “빛을 시적으로 표현한다”고 평했을 만큼 케레는 프로젝트 전반에서 빛을 중시한다. 그는 또 부르키나파소 라옹고 사회복지센터(2014)의 벽에 다양한 높이로 프레임 창을 설계해 서 있는 의사부터 앉아 있는 방문객, 누워 있는 환자까지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게 했다.

가디언은 “케레의 가장 야심 찬 건축물은 이제 시작”이라고 전했다. 괴테 연구소(세네갈), 박물관(르완다), 그리고 그가 교수로 있는 뮌헨의 대학 캠퍼스 시민센터 등이 준공을 앞뒀다. 부르키나파소 국회의사당도 설계했으나 군사 쿠데타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케레는 뉴욕타임스·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좋은 건축물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며 “기쁘고 벅차지만 책임감이 더 커졌다. 앞으로 내 삶은 더 편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는 건축을 통해 건물만 얻는 게 아니라 영감도 얻는다”며 “모든 사람이 좋은 품질, 화려함, 안락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도 “케레는 학교 만들기를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지었다. 공동체의 기쁨을 만드는 것, 그것이 건축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