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현대사회 지배자 '여론', 옛 철인들도 두려워했다

황태자의 사색 2022. 3. 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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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지배자 '여론', 옛 철인들도 두려워했다

동서양 `여론`의 역사

  • 허연 기자
  • 입력 : 2022.03.29 17:01:56   수정 : 2022.03.29 19: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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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포커스 / 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기보다 어렵다(防民之口 甚於防水).'

여론의 힘과 무서움을 상징하는 오래된 고사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 고사에는 이런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국 주(周)나라 때 일이다. 태평성대를 누리던 주나라는 여왕(廬王) 때에 이르러 국운이 쇠하기 시작한다.
 
본디 포악하고 교만했던 여왕의 폭정이 계속되자 기원전 841년에는 중국 역사 최초로 민란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백성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여왕은 이웃 나라에서 첩자들을 고용해 백성들을 감시하게 하고 자신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탄압으로 인해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이 줄어들자 여왕은 이를 자신의 치적이라고 자랑한다.

그때 충신인 소공(召公)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한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홍수를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막혔던 물이 한꺼번에 터지면 그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길을 막지 말고 터주어야 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소공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폭정을 계속하던 여왕은 결국 백성들에 의해 쫓겨난다.

여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다. 여론은 권력에서부터 모든 정책에 관여한다.
 
초연결사회를 상징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개인 미디어들이 발전하면서 여론의 힘은 더욱 커졌다.
 
여론은 때로는 올바른 물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포퓰리즘이나 음모론처럼 사회에 큰 병폐를 일으키기도 한다.
 
여론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정리해보자.

◆ 여론은 수레에 탄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


여론은 수레 '여(輿)'와 논의할 '논(論)'의 합성어다. 직역하면 '수레의 의견'이다. 의역하면 수레에 탄 사람들의 의견이다.
 
수레를 끄는 사람은 수레에 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대로 수레를 끌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레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수레를 끄는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여론은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의견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의견들이 모여 수레의 방향을 정하듯 국가 정책과 법률 등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는 것이다.
 
수레를 끄는 한 나라의 지도자를 바꿀 수도 있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민심(民心)'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민심은 맹자의 천명론과 연결되는 단어인데 여론보다는 조금 근본적이고 정리되지 않은 국민감정을 의미한다.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는 오늘날의 여론에 해당하는 개념을 공론(公論)이라고 했다.
 
율곡은 "공론(여론)이란 백성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론 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옳고 그름을 이론적으로 따지는 게 여론이 아니라 그냥 백성들이 생각하는 바가 곧 여론이라는 이야기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 서구 사회에서 여론의 탄생


여론을 두려워하고 경계한 것은 서양 문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여론은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여론을 무서워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플라톤(기원전 428~347)은 소수 현인들에 의한 절대권력을 옹호하면서 여론을 봉쇄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소수 엘리트가 국가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 플라톤에게 여론은 이성적이지 못한
'집단 감정'으로 보인 것이다.
 
그 이후 등장한 마키아벨리(1469~1527), 홉스(1588~1679), 헤겔(1770~1831) 같은 정치사상가들도 여론의 확장보다는 통제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근대적 의미의 여론은 서구의 개인주의적 시민사회에서 태동했다.
 
사회계약설,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의회제 등 민주주의 사상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로크(1632~1704)는 정치 권력이
국민의 여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서 등장한 루소(1712~1778) 역시 정치와 법률은 여론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루소는 여론을 '일반 의사(general will)'로 표현하면서, 공동체를 지도하는 최고 의견으로 규정했다.

여론이 중요해지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자각과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선행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법 앞에 평등, 언론의 자유, 시민의 정치 참여가 보장된 민주주의 시민사회가 도래해야 했다.
 
특히 선거권의 확대가 여론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선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대중 정치 행위다.
 
인쇄술의 발달, 교육시설과 교육 수준의 향상, 매스미디어의 발전 및 중산층의 성장도 여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 매스미디어 등장하면서 여론 오염되기 시작


여론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저서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인
월터 리프먼(1889~1974)의 '여론(Public Opinion)'이다.
 
철학자 존 듀이는 리프먼의 책을 읽고 "현재까지 글로 쓰인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 책은 언론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직시한 명저다.
 
리프먼은 사회심리학적 시각으로 어떻게 여론이 형성되고, 또 어떻게 왜곡되는지에 주목했다.

책 전반부에는 그가 제1차 세계대전에 선전장교로 근무했던 경험이 등장한다. 그 대목을 그대로 옮겨보자.

"1914년 망망대해의 한 섬에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들이 살고 있었다.
 
바깥 세계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60일마다 방문하는 영국의 연락선이 전부였다.
 
9월의 어느 날 사람들은 다음 연락선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난번 연락선이 전해준 신문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60일 만에 온) 선장이 전해준 이야기는 영국인과 프랑스인이 독일인과 싸움(1차 세계대전)을 치르게
됐다는 것이었다."

섬에서 함께 살던 영국계, 프랑스계, 독일계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친근한 이웃이었다.
 
적어도 전쟁이 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선장이 소식을 전해준 이후 섬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서로 경계심을 갖게 됐고, 어떤 사람은 조국으로 돌아가 입대를 하기도 했다. 마을에는 심각한 대립이 시작됐다.
 
만약 선장이 그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섬의 평화는 계속됐을 것이다. 여기서 '선장'은 바로 언론을 의미한다.

이 책을 통해 리프먼은 여론 조성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리프먼은 여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지니는 고정된 이미지를 뜻하는 말로, 흔히 '고정관념'이라고 번역한다.

예를 들면 대중은 보통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를 잘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축구를 잘하지는 않는다. 브라질 사람이 아니면서 축구를 잘하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만든 단순한 이미지를 전체인 것처럼 일반화시킨 관념이 '스테레오타입'이다.
 
대중에게는 이런 고정관념을 의심 없이 인정하는 습성이 있다. '정보 왜곡'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 여론조사가 오히려 여론 길들이기 될 수도


사실 여론이 합일점을 찾기 위한 노력은 '토론'에서 시작됐다.
 
사회 구성원 간 사상이나 입장 대립이 있을 때 공통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은 토론이다.
 
이러한 토론이 성장해 여론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거나 자주적인 처지에서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발언이 권력이나 기타의 사회적 압력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 금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여론 발전 과정을 4단계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여론이 지배자의 의사에 대해 수동적으로 침묵하는 단계, 두 번째는 지배자의 의사에 대해 비판을 드러내는 단계, 세 번째는 선거와 같은 다수결 원칙이 정책을 움직일 수 있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이 국민의 의사를 언제든지
측정하는 단계다.
 
문제는 여론이라는 것은 실체가 모호하고,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기준 또한 애매하다.
 
이러한 여론을 판단하기 위해 여론조사나 설문조사 등이 흔히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가 여론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국민 사이에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기정사실화해 국민 사이에 광범위하고 이성적인 토론이 생성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SNS 등장 확증편향에 의한 사실 왜곡 심각


이제 여론 형성의 가장 강력한 플랫폼은 SNS다. 여기서 리프먼의 이론을 다시 꺼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책 '여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무엇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린 다음에 읽는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말이다. 사실 SNS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확증편향에 의한 사실 왜곡이다.
 
확증편향은 객관적 사실과 관계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아닌가.
 
물론 SNS는 개인의 의견이 자유롭게 대중에게 전달되는 민주적인 의사 전달 창구 역할을 했다.
 
SNS의 발달이 묻혀버릴 뻔한 부당한 일들을 밝혀내고, 소수의 목소리를 알리는 등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SNS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 주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보다는 대중들이
이미 내린 판결을 강화시켜 주는 데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그 판결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SNS는 대중들이 믿고 싶은 걸 강화시켜 주고, 대중들이 믿고 싶지 않은 건 도태시키는 기능을 한다.
 
SNS를 독으로 만드느냐, 약으로 만드느냐는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손에 달렸다.

◆ 링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여론 목욕"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여론 목욕'(public opinion baths)이라 불렀다.
 
스스럼 없이 대중들을 만나는 링컨에게 비서들이 경호상의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론 목욕입니다. 사실 이런 방법으로 국민들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의견이 별로 좋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 효과는 혁신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첨단 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초연결사회를 사는 우리는 매일 '여론 목욕'에 시달린다.
 
정치가들이든 개인이든 그 여론 목욕을 통해 어떻게 깨끗하게 거듭날 것인가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숙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