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장경동 목사~데살로니가 전서 5장22절 제목 ~ 증후군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황태자의 사색 2022. 1. 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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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실 때에 나는 정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고 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체성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재로 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사람 하나님이 보시기에 두고 보기 다 가운 사람의 많은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문 속에 있는데 데살로니카 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래도 버리고 살아라그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사람의 자세예요. 악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두고 보기에도 아깝게 보시겠습니까 모든 악을 버려졌을 때 그렇지 않겠어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에도 삼가 누가 누구에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쫓으라 악과 선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악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고 선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니 사람이 악을 행한다면 마귀의 도구 마귀의 사람으로 쓰임받은 증거일 수 있고 사람이 선을 행한다면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면 인간에게는 언행 심사가 있습니다. 언행 심사 그런데 순서가 좀 잘못되었어요. 사심 언행이 맞습니다. 사심 언행 시작 생각사 마음심 말씀언 행할 행 즉 사람은 생각하고 마음 먹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거죠. 그런데 생각과 마음은 본질이기 때문에 보이지를 않습니다. 내면에 감춰져 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말 있잖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왜 본질이기 때문에 숨겨져 있어서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말과 행동이 밖으로 나타난 현상 때문에 비로소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해놓으셨어요. 마태복음 12장 33절 이하에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 그러니까 악이 나왔다 그 말은 악이 쌓였구나 선이 나왔다 그러면 선이 쌓였구나 제가 악이 나왔다 그러면 악이 쌓였구나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악이 나왔다 선이 나왔다 여러분 뭐가 나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쌓였던 것이 나온다. 그 말이죠. 참 중요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무와 실과는 일치된다는 거죠. 이거를 네박자로 해보면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으면 1등 나무는 안 좋은데 실과가 좋으면 2등 나무는 좋은데 실과가 안 좋으면 3등 나무도 안 좋고 실과도 안 좋으면 4등 1절 시작 여러분들은 아실지 모를지 모르지만요 난 진짜 감사한 게 뭔지 아세요. 우리 중문 교인 중에 치매 환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겁니다. 아 제가 갔는데 아이고 아저씨는 누구요. 없어 이런 사람 없어요. 아이고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이러지 아저씨 누구요. 없다니까 그 내 박자 속에 치매가 그냥 다 떠나고요 똑똑함이 막 오는 거예요. 이 네 박자를 내 박자로 따져서 그렇지 사실은 실과는 그 실과로 나무를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열매가 좋다. 그 말은 못 나보다 좋나무다 좋은 나무다 그런데 왜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어요. 좋은 나무야 왜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좋은 나무라니까 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어요. 열매로 나무를 안다 사람에게 적용을 해볼까요. 생각과 마음이 선하면 말과 행동도 선하면 1등입니다. 생각과 마음은 악하지만 말과 행동이 선하면 이등입니다. 생각과 마음은 선한데 말과 행동이 악하면 3등입니다. 생각과 마음도 악하고 말과 행동도 악하면 4등입니다. 같은 패턴으로 이것 또한 내 박자로 해놓아서 그렇지 사실은 말과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 말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선한 사람은 쌓은 선에서 뭐가 나오고 선한 것이 나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악에서 뭐가 나온다. 악한 것이 나온다. 이미 구약에서도 세상에 속담으로 이런 말씀이 있었더라고요 사무엘상 24장 13절에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그러니까 악이 났다. 그 말은 그 사람은 뭐였다. 악인입니다 선이 나왔다 그 말은 뭐였다. 선한 사람이었다. 그 말입니다. 제가 전에는 문장을 중심으로 보고 살았다면 지금은 단어도 중요하게 보고 삽니다. 제가 전에는 삶 전체를 중요하게 보고 살았다면 지금은 한 행동도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살고 있는데 그때도 모른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그렇게 절감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축구 좋아하잖아 축구 지금도 이렇게 볼을 차요. 딴 뜻은 없어요. 그냥 땀 빼고 건강하면 되니까 축구만 하면요. 나머지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축구하면 나머지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 축구를 쫙 하러 나갔는데 우리 회원 중에 아주 잘 자는 친구가 하나 있더라고 마음에 쏙 들더라고 내 마음속에 제를 꼭 전도해서 우리 교회 축구를 좀 발전을 시켜야 되겠다. 그래 갖고 이제 제가 접근을 해서 잘해줬어요. 밥도 사주고 또 용돈도 주고 이렇게 잘해줬어요. 그러니까 잘 알았어요. 그래서 이제 목적이 뭐야 내가 전도하려고 그래서 얘기했어요. 너 교회 와서 볼 차면 안 되겠니 제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조기 축구만 하지 말고 교회 와서 좀 볼 차자 그랬더니 대뜸 하는 말이 목사님 교회 가면 여자 소개시켜주나요. 총각 같으면 이해하죠. 총각이니까 좋은 자매 만나서 결혼하면 되는데 근데 유부남이었어요. 제가 그랬어요. 쓸데없는 그러지 말고 있는 마누라하고나 잘 하고 살아 그러고 지나갔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요. 우리 교회 열심히 잘 다니고 그랬어요. 그런데 사고가 터졌어요. 저는 그때는 그냥 농담으로 생각을 했는데 수십 년이 지나고 보니까 그 농담이 그냥 농담이 아니고 요게 제가 그 과정 속에 아주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있는데 굉장히 우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내가 볼 때 양이 아니야 염소야 은혜를 못 받았어 그래서 내가 불렀어야 미안한데 너 아직 염소다 너 아직 양이 안 됐다 좀 은혜 좀 받고 신앙생활 하면 좋겠다. 그랬더니 저한테 하는 말 목사님 솔직히 저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잘 모릅니다. 목사님이 형님 같이 너무 좋아서 그냥 다니는 겁니다 고맙다 그런데 너를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다. 그러니 꼭 예수님 만나거라 예수님 만나서 삶의 변화를 좀 가지고 양이 돼서 신앙생활을 하거라 그 말을 잘 알아듣고 은혜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그러지 않았어요. 한 번은 제가 오늘 교회 부흥회를 갔는데 제가 그런 설교를 했어요. 이렇게 일반인들을 보면요. 부부가 오래오래 해로 하는 게 최고입니다. 근데 이제 오래오래 해로 하다가 한 사람이 먼저 갈 때에 일반인 경우에는요 죄송합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꼭 먼저 간다면 남자가 먼저 가는 게 낫습니다. 남자가 먼저 가면 여자는요 엄청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사는데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먼저 가면요. 남자는 너무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목회자의 경우는 다릅니다. 목회자의 경우는 부부가 오래오래 해로 하는 게 최고입니다. 그런데 먼저 가려면요. 사모가 먼저 가는 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모가 먼저 가면요. 목사님은 목회를 계속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교인들이 놔두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편하잖아요. 목사님 오늘 또 아침을 잡쓰고 오셨나 빨래는 누가 하나 그러니까 목사님 안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가지고 어떻게든 밀어넣고 쑤셔 넣으래도 재혼을 시킵니다. 그래서 생활에 지장이 없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먼저 가시면 사모님은 목회 이어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 비워줘야 되는데 두 번째 재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 번째 어디 가서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뭘 이렇게 시킬래도요 모르면 이것 좀 해줘요. 저것 좀 해주는데 사모님이 사모님 이거 아 그냥 제가 하는 게 낫겠다 하고 그냥 안 쓰는 게 낫겠다. 그래서 진짜 어려운 분이 누구냐면 홀사모입니다. 홀사모 그래서 제가 그런 정황을 알아서 부부는 오래오래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먼저 가려면 일반인 경우에는 남자가 먼저 가는 게 낫고 목회자의 경우에는 사모가 먼저 가는 게 낳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살다가 그런 은총이 주어지려고 100% 농담이었어요. 그때 내가 알았어요. 아 사모가 먼저 가는 건 은총이구나 그래가지고 이제 다른 연합집회 가가지고 집회할 때 그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점심을 먹는데 원로 목사님이 딱 앞에 앉으시더니 강사님 사모가 먼저 가는 건 은총이 아니고 재앙입니다. 재앙입니다. 이건 또 뭔 소리요 아니 은총이라고 했는데 왜 이 분은 제앙이라고 할까 알아냈어 알아냈어 알아냈어 뭐를 일찍 가시면 은총입니다. 그러나 다 늙어서 가시면 재앙입니다.  일찍 가시면 젊으니까 재혼이라도 하는데 다 늙어서 가시면 최악입니다. 되돌려 봤어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냥 농담이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와보니 농담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된다는 거야 여러분 뭔가 잘 된 사람을 추정해 보면 틀림없이 그의 쓰는 언어 속에 단어 속에 잘 되는 단어를 썼을 겁니다. 뭔가 잘못된 삶을 뒤돌아보면 틀림없이 그 사람의 삶의 뒤안길에 쓰면 안 될 

안 좋은 단어를 썼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사업이 흥하는 사람은 되돌리면 흥한 단어를 많이 썼을 것이고 사업이 잘못된 분은 틀림없이 되돌려 보면 망한 단어들을 많이 썼을 거예요. 몸이 건강한 사람은 되돌려보면 건강한 단어를 많이 썼을 것이고 몸이 상한 사람은 되돌려 보면 건강이 무너지는 단어를 많이 썼을 겁니다그래서 오늘 본문이 너무 중요하게 와 닿아서 다시 얘기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마태복음 12장 36절에도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니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니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니 말로 의로워지기도 하고 니 말로 정죄 받기도 한다 그 말이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도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그렇다면 이제 그 한 사람의 구원을 받았는지 구원을 받지 못했는지 삶 전체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한 단어 속에서도 구원과 구원 못 받음이 찾아지는데 먼저 베드로와 가롯 유다의 삶 전체는 그만두고 한 단어 속에 예수님에 대한 호칭 속에서도 구원과 구원 못 받음이 드러나니 마태복음 16장 16절 이하를 보면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시되 바요나시오나 너 복이 있도다 이를 내게 알게 하니는 혈육이 아니오 하늘이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거는 그냥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한마디 고백입니다. 그런데 저 고백 속에 구원이 함축돼 있어요. 마태복음 14장 28절 이하에도 보면 베드로가 가로대 주여 만일 주시어도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소서 한데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를 질러가로되 주여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주여 저 한 단어 속에 물에서도 그의 인생도 심지어는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함 속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는 단어의 키가 그 속에서 보인다. 이거죠. 마태복음 26장 33절 이하에도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난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 가르치다 내가 진실로 네에게 이루느니 오늘 밤 다 불기 전에 니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용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들이 와 같이 말하니라 이게 베드로입니다. 그냥 말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주여  주여 하더니 아주 귀한 주님의 제자로서 아주 훌륭한 삶을 살다가 성경의 기록은 없지만 주님을 위해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아름다운 마지막을 장식하게 됩니다. 주여라는 한 단어 속에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거야 그런데 가롯 유다를 볼까요. 마태복음 26장 24절입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 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다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가 대답하시되 니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벌써 이 문장의 문맥이 아까는 참 은혜롭고 이번에는 벌써 분위기가 안 좋죠 그 분위기가 안 좋은 단어 랍비여 랍비여가 뭐여 이놈아 주여 이래야지 마태봉 26장 48절입니다.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와 랍비어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문장의 흐름도 확실히 좋지 않은 걸 느끼지만 그 안에 단어가 랍비여  랍비여 너무 안타까운 건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라고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 쉬운 주여가 베드로에게는 가롯 유다에게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단어이었으니 이거를 2천년을 뛰어넘어 지금에 와서 어이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은 내 구주시지 천국 갑니다. 예수가 누구야 이 사람아 사대 성인 중에 하나요.  확실하게 지옥 갑니다. 예수는 4대 성인 중에 하나라고 보면 당신하곤 상관없잖아 예수님은 내 구주십니다. 그래야 나와 상관이 있는 거지 여러분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까 주여라고 부릅니까 에 그 쉬운 말이 어떤 이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이라 그 말입니다. 호칭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그런데 이 호칭이 말만 중요한 것이 아닌 경우도 또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 이하를 보면 니가 만일 니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네 마음데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3절에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아주 뭐 주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아 그냥 주인 이름 부르면 뭐 받아 그냥 구원받아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 마태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주여 하면 천국에 가는 자가 있다. 다는 아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라고 하는 말만 가지고 안 되고 행함이 있어야 된다 마태복음입니다. 그래서 이 차이를 보니까 마태복음 25장 20절 이하를 보면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했네요.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니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내가 많은 것으로 내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거 문맥상 주여 그 말로 구원받았어요. 마테보 25장 22절입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한테 주여 저기도 주여 했네요. 내게 두 달란트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 이를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되는가 니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내가 많은 것으로 내게 맡기리니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 사람들은 주여 하고 천국 간 사람들 그런데 이 사람은 경우가 달라요 마테봉 25장 24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보세요. 주여는 셋이 다 똑같이 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벌써 분위기가 이상하잖아 문장 분위기가 그지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음을 두려워요. 벌써 단어가 안 좋잖아 두려워해요. 나가서 당신의 달란 땅에 감춰 감춰 벌써 좋지 않잖아 왜 감춰 왜 짱박어 왜 꼬불쳐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8절입니다.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바다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사람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인데 주여 하다가 말만 해놓고 살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또 있습니다. 마태복 25장 11절입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에게 가로되 주여 주여 보세요. 주여 주여 했으면 천국 가야 되는데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로디 진실로 너에 이르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 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주여 하고 천국 같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주여 주여 하고 천국 가지 못했으니 주여라는 말만 가지고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건 왜 그럴까 알아냈어요. 로마서 주연은 지금으로 따지면 북한입니다. 여러분 북한에서 저 예수 믿습니다. 예수 내고죠. 그러면 그냥 천국 갑니다. 그 사람 천국은 가는데 그냥 죽습니다. 아니면 어디 감옥에 붙잡혀 갑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주여 나는 예수 믿습니다. 나 교회 다닙니다. 그거 가지고는 믿을 수가 없어요. 그의 사는 삶을 들여다보아야 됩니다. 로마서는 북한 시대라면 마태복음은 남한 시대구나 제가 계속해서 제 마음속에 안타까운 게 한국 교회를 향하여 계속 와 닿는 게 뭐냐 하면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노아처럼 준비하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냥 먹고 마시고 시집 가고 장가가고 있는지 한번 꼭 점검하셔서 이 시대의 노아처럼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북한은 크리스찬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주 소수가 예수 믿고 있습니다. 다 숨어서 믿습니다. 남한은 참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게 뭔지 아세요. 지금 주님이 재림을 딱 하면 북한은 그냥 바로 올라갑니다. 말하나 타 주여 오시옵소서 그냥 쫙 올라가 버립니다. 남한은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주님 재림 딱 하시면 할렐루야 하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지만 아 지금 주님 지금 오시면 어떡해요. 지금 어 지금 아파트 분양 받아놓고 입주 날 며칠 안 남았는데 오시면 날 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죄송한데 주님 내가 진짜 십일조도 못해 가면서 부금 넣습니다. 내가 감사한 금 한 번 제대로 못하면서 할부금 넣습니다. 그런데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진짜 그런 크리스찬이 대한민국에는 바글바글해요. 세 번째 그렇다면 이제 한 단어 속에서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제가 찾아내 봤습니다. 첫 번째 사울입니다. 사울 왕 사무엘상 16장 14절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내케 한지라 여러분 번뇌하더니 결국 사울왕은 천국 가지 못합니다. 말을 바꾸면 천국 갈 사람은 번뇌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번뇌가 있다면 더 얘기할 거 없어 회개하십시오 왜 인간이 번뇌합니까 그 번뇌할 내용을 주님께 맡겨야지 그 번뇌의 소스가 악신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오늘 여러분이 번뇌한다는 말은 악신의 영향권 속에 살고 있다. 그 말입니다. 왜 그걸 보고 깨달으세요. 말씀 속에서 찬송 속에 다 드러나잖아요. 주안에 있는 나에게 다 번뇌에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가 내 짐을 드렸네 할렐루야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듣지 마십시오 목사님 전 왜 이렇게 번뇌가 많아요. 그러면요.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물리치십시오 당신 배후에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주님 말씀대로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결정적 증거가 번뇌입니다. 두 번째 바리새인인데 누가복음 15장 1절 이하를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대 원망하여 가로되 천국 갈 사람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천국 갈 사람은 원망하지 않는다 시작 고린도전서 10장 10절을 보세요.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뭐 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성경에 있는 인물 가운데 억울하기로만 치면 내가 볼 때 등수 안에 드는 분 중에 한 분이 요셉입니다. 요셉처럼 억울한 사람이 없어요. 형제들에게 팔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덮어 씌워서 감옥을 가고 술 맡은 관원장이 빼준다고 해놓고 빼주지 않고 그렇게 억울한데도 요셉의 삶에 원망이 있나 보세요. 원망하지 않아요. 원망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원망할 상황을 원망하지 않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다 그 말입니다. 감히 누구를 원망합니까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그 사람이 나로 하여금 원망하게 했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제대로 구원받은 사람의 자세가 안 나오고 있구나 그 생각은 못했잖아요. 원망하지 마세요. 아무리 나쁜 사람을 만나도 원망하지 마세요. 그냥 놔둬버리세요. 그냥 놔둬 버리세요. 기도하세요. 할렐로야 그러면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게 구원받은 사람의 자세란 말이여 그게 구원받은 사람의 나타날 향기란 말이여 뭐 하지 말라고요 원망하지 말라니까 이유 여하를 떠나서 아무도 누구도 나는 원망하지 않아 아무도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으리라 시작 그럼 그게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세란 말이에요. 향기 오늘로 원망 끝 악은 원망은 악이다. 세 번째 강도입니다. 누가복음 23장 삼십구절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아하 저 사람 지옥 갑니다. 비방하다 지옥 갑니다. 비방은 구원받은 사람의 언어가 아닙니다. 비방은 구원받은 사람의 언어가 아니다 시작 대선 주자들한테 좀 전해주세요. 비방은 구원받은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왜 비방을 하세요. 그냥 내 좋은 얘기만 하세요. 내 좋은얘기만 나는 이렇게 할 겁니다. 나는 이렇게 할 거 나 이렇게 이런 나라를 만들 겁니다. 계속 좋은 얘기만 하세요. 그 좋은 얘기 중에 좋은 얘기 중에 내 진짜 좋은 얘기 하나 들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 내가 대통령 되면 청와대 없애버리겠다고 여러분은 그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요 저 청와대가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청와대가 박수 치네 왜 그런지 잘 들어보세요. 이게 왜 그런 줄 아세요. 내가 얘기했잖아요. 대통령이 되면요. 너무 높아져요. 왜 국민들이 막 그 경호원들이 떠받들어서 본인이 자진해서 내려와야 되는데 너무 높아지니까 내려와야 될 때 내려오지 못하고 떨어져버리는 거예요. 적당히 올라가야 내려오는데 너무 높이 올라가니까 떨어지는 거요. 그걸 왜 모를까 안타까워서 그래 안타까워서 너무 높아지니까 백성하고 대화가 안돼요 대화가 안돼 그러니까 말을 듣지를 않는 거예요. 왜 안 들어요. 다 듣습니다. 들어요. 중간에서 보고 하는 사람 얘기만 들어요. 그 보고하는 사람은요 나쁜 얘기는 안 해요. 좋은 얘기만 해줘요. 그러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보세요. 제대로 된 임금은 사복 입고 민생 시찰하잖아  원로는 신용하고 자기가 임금을 욕을 걸어보는 거예요. 아이고 그 임금님 아주 나쁘죠 아이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 임금님 같이 좋은 분이 없습니다. 아이고 그래 내가 볼 때는 나쁜 거 아 이 사람이고 큰일 날 사람이네 이렇게 얘기하면 이 훌륭한 임금이야 

그 임금님 아주 나쁜 임금이 아이고 진짜 내가 그냥 만날 수가 없어 그냥 마담이 야 죽여버리고 싶어요. 내가 그러면요. 그 백성의 말을 들을 줄을 알아야 돼 왜 독일의 그 총리가 왜 훌륭합니까 메르켈이 인물이 훌륭합니까 인물로 지면 우리 교회 권사들이 다 거기 총리해야 돼 인물로 치면 그냥 거기는 우리 교인은 오드리 햅분이고 메르켈 총리는 삼들이 해뿐이여 인물이 몸매가 다시 옵니까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아줌마 같아요. 근데 그의 소탈한 삶이 그의 소탈한 삶이 모든 독일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을 받게 하잖아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삶이 소탈합니까 그냥 제 얘깁니다. 전 좀 유명하잖아요. 아 솔직하게 유명하잖아요. 제 뒤에 표도 엄청 많아 선거 전에는 다 만나져요. 당선만 되면 만나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만나서 나쁜 소리 하겠습니까 해된 소리 하겠습니까 아니 제 설교를 그렇게 들었으면서 물론 누가 완벽하겠냐만은 여러분 제가 한 말 속에 뭘 그렇게 허물이 많습니다. 내 말에 허물이 많으면 니 말은 없냐 전달이 안 돼요 내 말이 전달이 안 돼요 왜 그런지 아세요. 너무 높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우리 대전시가요 참 좋은 건 관사 폐쇄했어요. 관사가 어린이집으로 바꿨습니다. 참 훌륭합니다. 누가 했는지 몰라도 여러분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관사사입니까 그냥 편안한 데 사는 게 낫지 솔직하게 말해서 관사가 있어야 할 분도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은요 지금 아유 그냥 관사 필요 없습니다. 그냥 새 집이 좋습니다. 청와대 없어져야 됩니다. 그래야 참된 민주주의가 이 땅 위에 꽃 피우고 대통령과 백성의 소통이 제대로 되는 거야 이게 그냥 제 생각이야 나는 모든 대통령들이 내뱉은 어떤 공약 가운데 나는 그게 제일 은혜가 돼서 내가 얘기해 주는 거예요. 저 청와대 없어져야 돼 그래야지 제가 만나서 하고 싶은 말도 하고 해주고 싶은 기도도 해주고 네 번째 탕자 형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8절입니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노하여 이러면 안 됩니다. 저 노가 천국을 못 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은 이렇게 말하네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거라 분을 내다 보면 마귀가 틈을 탈 수 있구나 지금 여러분 굉장히 조심해야 될 것 가운데 하나가 참고하세요. 절대로 부딪히지 마세요. 시작 잘 잘못과 상관없이 부딪히지 마세요. 왜 그러냐면 부딪힌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요 죄송합니다. 정신과 약 먹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분들에게 특징 가운데 하나가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그냥 화내고 말이 안 되면 화나면 죽여버린다니까 그냥 난 진짜 우리나라하고 일본하고 또 내가 비교해 보면 너무 차이가 많이 일본은요 신기한 게요 이렇게 발을 딱 밟잖아요. 그러면 밟힌 사람이 밟은 사람이 아 미안해요. 세미 마생 이래야 되는데  밟힌 사람이 미안하다고 그래요 이거 뭔 야단이냐 밟은 사람이 잘은데 왜 밟힌 사람이 그럴까 들여다보니까 미안하니까 해꼬지 하지 마세요. 그 말이래요 내가 미안해 할 테니까 나를 해고지하지 마세요. 이거 그 말이래요 여러분 잘 보세요. 대한민국의 어떤 높은 관저는요 잔디가 깔려 있어요. 근데 일본은요 전부 자갈을 깔아놨어요. 자갈을 그리고요 딱 들어가면요. 이 마루를 삐거덕 삐거닥 이렇게 뒤틀리게 해놨대 뒤틀리게 삐거닥 삐거닥 게 그리고 일본 분들은 나막신을 심어요. 그러니까  빼가도 빼가도 누가 들어오는 걸 안에 살고 위에다가 건물 2개를 꼭 뽑아놨어요. 해꼬지러 오면은 그놈으로 자기가 이기려고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들어와도 들리지도 않게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죠. 굉장히 문화적 차이입니다. 왜 일본은요 온갖 귀신이 바글바글합니다. 본인들은 알든 모르든 그 귀신들이 바글거리는 증거 하나만 딱 떼 드릴게요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 증거 하나 딱 대드릴게요 독도는 우리 땅이다. 누가 또 일본에 관계된 분 있으면 전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설교했다고 개인적으로도 거짓말 하면 안 되는데 어떻게 나라적으로 거짓말을 합니까 조심하셔야 됩니다. 마귀 역사의 증거 가운데 하나가 분노 조절 장애로 굉장히 많이 역사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 자유롭게 살아서 그러죠 조심해야 될 사람들 굉장히 많습니다. 다섯 번째 가롯 유다입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며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막고 떠는 것을 훔쳐가미로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 하나가 뭔지 아세요. 빼먹는 죄입니다. 빼먹는 죄 교회에서도 나라에서도 하나님은 아시지 본인도 알고 고린도전서 6장 9절 이하를 보세요. 불리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욕으로 받지 못할 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마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호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담담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도욕하는 자나 도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혹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간단합니다. 쉽습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냥 남 목사라 그런지 내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무슨 시장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선순위가 시장이나 의원이나 대통령하고 천국 가면 1등 못해도 천국 가면 2등 하고 지옥 가면 3등 하지도 못하고 지옥 가면 재수 옴 붙어서 4등 몇 번이요 무엇이 여러분이 대통령을 했어 시장을 했어 그걸 나보고 믿으라 그 말이여 지금 여기 남색이 나옵니다. 남색이 뭐요 동성애입니다. 동성애 동성애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천국 간다. 허허 하나님도 못 오는 일을 하시겠다. 그 말이네 그런 목사가 목표는 교회를 다닌다 후후 여섯 번째 부자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입니다. 부자가 있어 자세 옥과 고운 배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벌써 자세가 천국 갈 자세가 아니잖아 호화로이 연락한다 그러면 안되죠 설령 내가 저렇게 살 능력이 있어도 그럴 여유가 있어도 저렇게 사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제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오는 특징 단어 하나씩 찾아볼게요 첫째 강도입니다. 누가 복 23장 42절 이하입니다 가로데 예수님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니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어 주님 나 기억해주세요. 주님 나를 기억해주세요. 주님 나를 잊지 마세요. 그 단어 하나가 천국 가는 단어입니다. 세리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입니다. 세리는 멀리 있어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못 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저 한 단어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 한 단어가가 천국가는 단어입니다. 탕자입니다. 누가복은 십오장 십칠절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풍족한 풍분이 얼마나 많은고 돌이켜 한 단어가 돌이켜 돌이켜야 돼요 그게 한 단어가 구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요셉입니다. 창세기 41장 38절입니다. 바로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쩌든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여기 한 단어가 구원을 받게 합니다. 나는 더 얘기할 거 없어요. 여러분은 성령의 감동으로 사시기를 바래요 그러면 그냥 나머지는요 그냥 그 안에서 다 해결이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8장 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갈았을 때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뭔 말입니까 아브라함하고 나하고는 비밀이 없다. 이거 참 나 욕심 나요. 진짜 저런 게 욕심 나요. 경동아 내가 너한테 뭔 말은 못 오겠냐 하나님 그렇게 좀 얘기 좀 해줘봐야죠  그러면 하나님이 알았어 이러셔야 되는데 니가 그렇게 얘기할 군번이냐 또 이러실 것 같아 하나님 하고 못할 얘기 없는 관계 천국 갈 관계 아닙니까 내가 너한테 뭘 숨기겠느냐 부부 간에도 그렇잖아 여보 내가 당신한테 뭘 숨기겠어 이래야지 당신한테 어떻게 얘기를 해 어느 쪽이요 어이 왜 뜨끔뜨끔이야 한번 해봐봐 내가 당신한테 뭔 말을 못하겠어 시작 그쪽 계열이요 어떻게 당신한테 다 얘기해 시작 못 하겄지 보세요. 부부 간에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도 다윗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입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르치되 내가 이 새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세상에 진짜 부러워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과 합할 수 있을까 놀랍지 않습니까 저런 걸 좀 부러워하세요. 피부가 뽀얗다는 둥 그게 무슨 뽀야는 거여 창백한 거지 이래 아유 진짜 앞으로 중문 교회는 다 까무잡잡하세요. 그냥 담임 목사님 닮아가지고 하얀 하기만 했다. 마라 그냥 아가씨는 이에 아가씨는 아줌마 할머니 하얀에서 어쩌자는 거요. 이 하얀에서 어쩌자는 거예요. 하얀에서 나 그냥 전부 꺼무튀튀 요게 그냥 건강미가 막 넘쳐나게 할렐루야 마지막입니다. 사도행전 사장 이십구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급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하중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며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라 그겁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충만하여 끝 시작 좀 더 충만하게 성령이 충만하여 그게 뭔 충만이요 성령이 간당간당하여 그러고만 성령이 충만하여 시작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러나 그러면 구원의 단어에요. 본문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 악은 모든 모양이래도 버려라 여기까지 말씀 듣고 보니까 여러분의 삶은 어떻게 구원의 단어가 탁 있어요. 지옥 갈 단어가 탁탁 걸려요. 눈을 다 감으시고 두 손을 가슴에 딱 얹으시고 한 단어 속에 구원을 볼 수 있고 한 단어 속에 지옥을 볼 수 있는 걸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이 쓰는 언어를 점검해 보십시오 왜 제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벌금 천 원이라도 받아가면서 그런 말을 못 쓰게 하는지 이제 와 닿죠. 악은 모양도 버려야 되지만 언어도 버려야 됩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과 아버지 하나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 교통하심이 사랑하는 성도들 머리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